'이렇게 만난 것도, 어떠한 인연이야'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는 어느 밤, 같은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선배는 검은 머리 아가씨를 오래도록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에 띄기 위해 우연처럼 보이는 등장을 셀 수 없이 해왔지만 생각처럼 친해지지 못했던 터라
2차에서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야지 계획하고 있었는데,
1차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선배는 그녀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다 이상한 사람들에게 꼬입니다.
한편 그녀는, 지루했던 1차를 끝낸 후 좋아하는 칵테일을 마시고 있습니다.
한 잔 한 잔, 아름다운 보석 같은 술들을 골라 마시는 행복한 순간을 느낀 것도 잠시,
그녀에게 술 한잔과 함께 다가오는 어떤 남성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인가 싶어 이야기를 나누지만 변태 같은 그의 손길에 검은 머리 아가씨는 펀치를 날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어떤 두 행인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어느 날 밤, 우연히 서로서로 기묘한 만남을 하게 된 선배와 검은 머리 아가씨.
그 후로 벌어지는 신기한 행인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사고들.
끝나지 않는 그들의 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작가의 동명 판타지 소설이 애니메이션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며 천재 작가로 불리고 있는, 문학상을 여럿 수상하기도 한 작가인데,
특히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은 그의 수작으로 불리며 국내에서도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애니메이션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감독입니다.
감독 역시 천재로 불리는 유아사 마사아키라는 사람으로,
그만의 통통 튀는 색감과 간략하지만 생생한 표현력이, 이 소설을 만났을 때 어떤 대작이 완성될지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몰렸습니다.
역시나, 그들의 세계관이 만나 완성된 작품은 여러 수상을 싹쓸이 끌어모은 것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일단 이 소설의 스토리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어떠한 정해진 틀이 없습니다. 이 사람과 이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여기서 다시 만나며,
하나의 사건은 완료되는 듯하면서 다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져 나가기 때문에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구난방으로도 보이지만 그 속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어서 거부감은 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는 뜻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겠군'하는 예상을 세우기가 어려운데,
그게, 재밌습니다.
그러한 스토리를, 애니메이션이 한층 더 제대로 표현해줍니다.
통통 튀는 강렬한 색감과 신통방통한 구도로 화면을 압도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고..? 싶은 기발한 표현력이 애니메이션의 시작과 끝까지 이어져 놀라움을 선사해주고,
캐릭터들의 특징 또한 섬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러한 것들이 '단순화된 선'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는 내내 피로하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마치 팝아트와 같은 장면들도 나오고,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웃음을 지어내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계속 진지하지만은 않아서 더더욱 다채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와 색감, 표현과 함께 성우 역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선배' 역을 맡은 사람은 호시노 겐이라는 엔터테이너입니다.
배우는 물론 싱어송라이터로 영화, 드라마, 성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뽐냅니다.
(못했으면 아마 엄청 욕을 먹었을 텐데) 다 잘해서 믿고 보는 호시노 겐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감정 연기는 '선배'라는 캐릭터와 굉장히 잘 어우러집니다.
'검은 머리 아가씨' 역은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베테랑 성우 하나자와 카나가 맡았습니다.
'너의 이름은', '언어의 정원'과 같은 굵직한 작품은 물론, 티브이 시리즈부터 게임까지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그녀인 만큼,
맑은 목소리에 강단 있는 성격의 캐릭터를 표현해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시노 겐과의 목소리 합 또한 완벽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참 독보적입니다.
스토리는 물론 그림체와 색감과 효과들의 시너지가 완벽한데 그 장벽이 높지 않아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습니다.
작중 세상은 아름답고 기묘합니다.
보고 있으면 그 언젠가의 여름날 밤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을밤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낡은 책들의 냄새가 바람결에 전해져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달콤한 칵테일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꿨던 꿈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작품입니다.
신나고 화려하게 이어져나가는 스토리와 캐릭터들을 보면서,
저는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는 젊음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라는 말로 여러 경험을 하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한순간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없는 '선배'의 모습은 에너지가 넘치면서 동시에
현재의 시간을, 인연을 소중히 하려 노력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물론 앞서 서술한 대로 이렇다! 하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보는 내내 이게 지금 무슨 전개..?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 특유의 표현들이 총집합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장면들은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포일 거라 장담은 하지 못하겠지만,
화면이 정말 예쁘고 독특해서 틀어두고 감상하기만으로도 좋습니다.
아직 보지 않았다, 하는 분들은 일단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로 한번 틀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나는 상상력이 술기운과 함께(?) 폭발하는 작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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