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천천히 살아도, 매일이 똑같아도 지금 이대로 괜찮아.''
봄이 찾아온 교토의 어느 조용한 강변 마을.
벚꽃잎이 흩날리는 골목길에 아침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하루를 시작합니다.
위스키만 파는 바를 운영하는 세츠코는 화초에 물을 주고,
카페를 하는 타카코는 창문을 깨끗하게 닦으며,
하츠미의 두부 가게에는 이미 뽀오얀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욕탕을 운영하는 오토메와 그의 아들 진,
푸근한 미소의 마코토, 세츠코의 바를 즐겨 찾는 야마노하까지,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이 영화는 어떠한 큰 사건, 사고 없이 흘러가는,
어느 조용한 마을의 조용한 일상들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제목이 된 '마더 워터'는 본래 위스키를 만들 때 베이스가 되는 물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꼭 위스키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어떠한 근원, 일상을 만들어주는 삶의 베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부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목욕탕을 채우고, 하루를 살아갈 음식을 만들 때 쓰이는 물,
즉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근원 물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 즉 그들의 마음 가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더 워터와 함께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들이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각양각색이지만, 잘 보면 공통된 부분이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것. 불안해하지 않는 것. 하루를 최대한 풍족한 마음으로 보내는 것.
가게에 손님이 없으면 밖에 나와 신선한 바람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동네 사람이 찾아오면 함께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눕니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볕이 좋으면 나가서 산책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렇게 마음 편하게 어떻게 살아. 영화니까 가능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조금 부럽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편안한 표정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마코토가 매일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는
마코토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그 마음 가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츠미의 두부 가게에는 가게 밖에 의자가 놓여있어 그 자리에서 두부를 맛볼 수 있습니다.
봄의 햇빛을 받으며 하얀 두부를 먹는 동네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가지고 있을 고민거리를 두부와 함께 먹어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귀찮아서 위스키만 판다고 하는 세츠코의 바에는 딱 필요한 물건만 존재합니다.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서인지, 이 곳에서 주인공은 손님입니다.
길이 들어 윤이 나는 테이블과 의자로 꾸민 가게는 깔끔하고 편안해서
처음 온 손님도 녹아들 수 있고, 누구든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타카코의 카페는 음악을 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커피콩을 갈고,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리는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길가의 소리가 배경 음악입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편안한 시간. 그녀가 카페에 온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시간입니다.
또, 그들은 서로서로 친구입니다.
그래서 함께 간식을 먹고, 햇빛을 받으며 두부를 먹고, 차를 마시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굉장할 것도 없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동네의 일상 속에서
편안한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 지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마다 고민을 서로서로 들어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무조건 어떠한 답을 내기보다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들을 함께 생각해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무조건 고민 없이 살자는 그런 무책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남들보다 잘났다고 으스대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을 위한 하루를 보내자. 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주변 시선에 내 욕심에 쫓겨 바쁘게 지내오진 않았는지,
내 삶을 지탱해주는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달려오진 않았는지,
때로는 휴식도 취하고 천천히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창문을 열어두고 이 영화를 보시는 건 어떤가요?
방 안에 가득 퍼지는 교토의 봄과 그들의 일상과 함께,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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