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가는 어느 날 장터에서 눈에 띄는 예쁜 빨간 금붕어를 사 옵니다.
적적하던 생활에 한 줄기 벗이 필요했던 노작가의 마음이 통했는지,
예쁜 금붕어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직접 '아카이 아카코'라는 이름을 짓고는 노작가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녀는 이 세상이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신기한 게 많습니다.
노작가 역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습니다.
함께 잠이 들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망한 과거의 연인 유리코도 볼 수 있고 일본의 대문호 '아쿠타가와'도 나타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습니다.
아카코와 노작가는 그렇게 감정의 교류를 계속해 나가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얼마 못가 노작가에게 다른 (인간의) 애인이 생기고, 그는 자꾸만 외출을 하게 됩니다.
노작가를 따라나선 아카코는 노작가와 애인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되고 마는데...
아카코는 앞으로도 노작가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존재는 노작가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를 띠는 걸까요?
젊은 여성의 몸을 하고서 일본에서 보통 어린아이가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1인칭 대명사 'あたい아타이'를 쓰는 아카코.
어떨 땐 젊은 여성으로, 어떨땐 금붕어로 모습을 바꿔가며 등장하며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카코가 'おじさま오지사마'라고 부르는 노작가 역시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와 딸로 보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보이는데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잠을 자기도 합니다.
둘은 서로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연인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땐 아버지가 딸을 대하듯 훈계하기도 합니다.
아카코와 함께일 때, 노작가는 지나간 과거를 자주 회상합니다.
이미 사망한 노작가의 과거 연인이나 대문호가 나타나고 그녀 역시 함께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아닌 것도 같지만 분명 인간인 노작가 역시 그 장면 속에 나타나는 걸 보면 인간인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금붕어가 환생을 한 것인지, 노작가만이 볼 수 있는 환영인지 헷갈리지만,
결국 막판에 그 정답이 나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노작가에게 아카코가 등장했던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러한 결말이 노작가에게 주는 것은 단지 슬픔뿐일까.
영화의 일본어 원제는 ’蜜のあわれ’, 영어로는 'Bitter Honey'입니다.
어떻게 번역을 해도 달콤함과 씁쓸함을 뜻하는 제목이 될 것만 같은 이 작품은,
대화로만 이루어진 동명의 초현실주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이해하기에 앞서 원작 소설에 관해서 조금 설명을 하자면,
원작을 집필한 작가의 이름은 무로우 사이세이입니다.
사이세이는 죽기 3년 전, 원작 '蜜のあわれ'-한국어 제목 '꿀의 정취'-를 집필했습니다.
이 원작 속 작가가 자신이라는 점,
아카코로 대표되는 등장 여성은 그가 생전 알았던 여성을 모두 투영한 것이라는 점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카코와 사이세이는 서로의 대화로만 이어지는 소설 속에서 영화보다 더 직설적으로 '성'과 '생(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비슷한 시기 많은 소설가들이 이미 여성의 성에 관한 소설을 발표했었지만, 사이세이는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펼져 나갑니다.
'성'에 관한 모든 관심이 자신을 향해있는, 본인의 창작 생활의 기본이 '성'이고 곧 '생(삶)'인,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성'='삶'이라는 찬가와 같은 소설로 적어 내려갑니다.
소설의 주인공 아카코, 즉 금붕어는 그에게 있어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을 표현한 존재로
'성'만큼 그의 '삶'의 원천이 되는 '생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금붕어라는 존재를 통해 성과 생명에 대한 순수한 존경과 동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노작가로 나오는 그의 이름 역시 사이세이란 점으로 보아,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모티브로 한 몽상 영화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존재했던 작가 무로우 사이세이의 몽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을 티나게 설명 하지 않고,
원작 그대로의 해석도 가능하지만 또 다른 해석 역시 가능하도록 이른바 오픈 엔딩으로 영화를 끝냅니다.
어떤 해석이 존재해도 문제없겠지만 공통되는 주제로는,
감정의 교류, 욕망과 사랑의 성취, 상실, 열망, 그리고 생명의 허무함을 들 수 있습니다.
영화의 총 4부로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금붕어가 경험하는 탄생과 성장과 죽음 역시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그 제목과 걸맞게 노작가가 죽음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회상하는
'젊은 시절의 행복'을 그렸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노작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었다고 할 지라도,
그는 금붕어라는 존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또 한 번 젊음을 경험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 '성', '삶', '생명'에 관한 고찰을 함께 하지만
결국 지나간 환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덧없음과 공허함 역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호평을 받은 것은 금붕어, 아카코 역을 맡은 배우 니카이도 후미의 연기와 그 분위기입니다.
아카코의 연기는 그녀 자신에게도 파격적인 도전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귀엽지만 매혹적인, 정적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역동적인 아카코를, 아니 금붕어 그 자체를 연기해내고 있습니다.
몽상적인 화면 연출과 복고풍 색감, 분위기와 알맞은 절묘한 음악과 효과음들이 더불어져 그녀의 연기력은 한층 더 빛을 발하고,
영화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빨간 의상과 그녀의 몸짓은 화면을 압도해나갑니다.
이 영화는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물론 다른 등장 배우들의 연기 또한 압권입니다.
영화가 지루하다 느껴질 때는, 다른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두 주인공을 바라보는 등 시각의 전환을 해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 만으로도 상상을 할 수 있었던 소설과 달리, 영화는 사실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연출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지루하다, 아저씨의 판타지일 뿐이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으니,
그러한 부분도 감안하신 후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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