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가, '같이 걷기만 하면 100만 엔을 주겠다.'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받아들이실 건가요?
아니면 이상한 제안이라 생각하고 무시하실 건가요?
살짝 의심스럽기도 한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한 청년이 있습니다.
이름은 후미야, 대학생입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빚이 84만 엔에 달하고, 기분을 바꿔보려 삼색 치약을 사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돈을 빌려준 후쿠하라는 얼른 갚으라며 집까지 찾아오고 삼일이라는 시간을 줍니다.
그러더니, 이틀만에 다시 찾아와 이번에는 자신과 함께 도쿄 산책을 하기만 하면 100만 엔을 준다고 합니다.
조건은 단 두 가지.
목적지는 '카스미가세키', 기한은 후쿠하라가 만족할 때까지.
밑질 것 없다고 생각한 후미야는 그 길로 그와 함께 산책을 떠나고, 그렇게 영화는 시작됩니다.
정말 단순하게 지도로만 본다면, 후미야와 후쿠하라가 산책을 시작한 곳에서 목적지까지는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리 급하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길을 걷다 보이는 유명한 야키토리집에서 입가심을 하기도 하고,
후미야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냐며 굳이 찾아가기도 합니다.
후쿠하라가 종종 가던 단골집에 들러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그러다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후쿠하라는 인연이 있던 한 여인의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며칠간 묵게 됩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영화에서 두 사람을 줄곧 길거리를 걷고 가게를 들어가며 행인들과 지나쳐 갑니다.
커다란 사건도 사고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 잔잔한 메시지들과 풍경들은 잔잔합니다.
하지만 피식 웃을 수 있는 유머 코드들이 이어져 지루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 누구나가 접할 법한 상황 속에서 재미난 발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뜬금없이 좋은 대사를 던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연출은 감독을 맡은 미키 사토시의 작품 전반에서 보여지는 특징입니다.
대사와 연출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아차리게 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죠.
초반에는 남성 두 명이 극을 이어가다가 중후반부터는 여성 두 명이 합세하면서
우연하지만 우연하지 않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전혀 모르던 네 명의 사람을 보던 시점에서 어느새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일상에 대한 물음표도 던져줍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정말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많은 분들은, 일상 속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영화라고 합니다.
저는 더해서, 일상 속 '잊고 있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잊어버렸던 것들, 굉장히 사소하고 단순한 것들인데 너무 사소해서 잊었던 것들을
주인공들의 주변을 돌아보며, 내 주변을 돌아보며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더해서, 산책을 하고 싶게 만들어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곳 주변, 살아왔던 곳 주변, 가보고 싶었던 곳, 등등을 걸어보고 싶게 만듭니다.
주인공들이 그랬듯, 걸으면서 굳이 거창하게 무언가를 느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발 닿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겠죠?
날씨가 좋은 어느 주말, 오전에 이 영화를 보신 후 뒤이어 산책을 나가시면 어떨까요? ^^
바쁘게 살아오며 잊었던 것들에 대해 느끼게 해주는 영화, 텐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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