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나: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길이 안 보이네.. 거기 약도 좀 봐주실래요?
타에코: 네, 여기... 어..? 이건 좀..
하루나: 그래 보여도 의외로 찾아가진 다니까요.
타에코: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가다 오른쪽으로 라고 되어 있는데요...?
하루나: 아 네, 길 알 것 같아요.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는 어느날,
조용한 시골 바닷가 마을에 홀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타에코.
그녀는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온 관광객입니다.
딱히 계획은 없고 그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이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도착한 민박집은 작고 하얀 목조 건물.
조용하고, 깔끔하고, 큰 주방이 있습니다.
민박의 주인은 유지라는 사람인데, 굉장히 인상이 좋습니다.
걸어서 탁 트인 바다에 갈 수 있는 위치인 건 좋은데,
간판이 없어 찾기가 어려웠던 타에코에게,
민박 주인 유지는 큰 간판을 내 걸면 손님이 그만큼 많이 오게 되니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쉬고 싶은 타에코에게 섬사람들은 참 관심이 많습니다.
섬에 사는 민박의 주인인 유지는 뭘 자꾸 같이 먹자고 권유하고,
민박에 매일같이 놀러 오는 섬의 학교 선생님 하루나는 시시콜콜 참견 아닌 참견을 합니다.
어디 사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름이 되면 홀연히 나타나 팥빙수를 팔다 또 홀연히 떠나버린다는 사쿠라는
늦잠 자고 싶은 타에코를 깨워 아침 체조에 데려갑니다.
도쿄에서 타에코를 따라 놀러 온 요모기까지 등장하면서 어째 타에코는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상한 아침 체조도 싫고, 다 싫어진 타에코는,
섬 안에 또 하나의 숙박 시설이 있다는 말에 짐을 쌉니다.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런 그녀의 짐을 보고 섬의 누군가가 말합니다.
"짐이 많으시네요."
필요한 것만 챙겨 왔다는 타에코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사쿠라 씨는 매년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 여기 오시거든요, 잠깐 집 앞 슈퍼에 가나 싶은 느낌으로."
그 대화를 뒤로 한 채 타에코는 새로운 숙소로 갑니다.
타에코는, 바뀐 숙소에서 원했던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까요?
그전에, 타에코가 원하던 휴식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카모메 식당'에서 메가폰을 잡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과 그 스텝들이 또 한 번 손을 맞잡고 그려 낸 영화 '안경'.
그래서일까요, 두 영화는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바다와 햇살과 바람과 함께 일상은 조용히 흘러가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그 옆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는 무겁지 않은 고찰과 편안한 유머인,
그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2021/01/08 - [소소한 영화이야기] -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커피, 시나몬 롤, 오니기리, 그리고 사람들.
휴식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런 것만이 진정한 휴식이지!라고 못 박지 않습니다.
여러 형태의 휴식에 대해서 단어로, 모션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휴식에 관련된 자잘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휴식이란?
진정한 휴식이란?
휴식..? 쉼..?
이란 물음표로 연결됩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선 휴식이 필요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 몸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휴식을 얻기조차 참 쉽지 않습니다.
힘들게 얻어야 하는 휴가라서 그런 걸까요, 휴가에서 조차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화 초반 타에코의 모습은 꼭 그런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쉬기 위해 섬에 왔는데, 어떻게 쉬는 것이 (자신을 위한) 진정한 쉼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생각이 드는 대로 자신이 휴식이라 생각하는 것들 - 독서와 뜨개질 같은 것-을 하긴 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그랬던 타에코가 조금 변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던 휴식이 어떤 건지 깨달은' 혹은
'왜 진정한 휴식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깨달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지는 영화를 통해 꼭 확인해보셨으면 하는데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날엔,
타에코가 갔던 마을에서 사쿠라와 유지와 하루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
나의 휴식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후 조금의 시간을 거쳐 두 번째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장소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고,
또 조금의 시간을 거쳐 세 번째 보고 나서는
나를 둘러싼 주변의 여러 가지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실에 지치신 분들,
어떤 휴식을 취하고 싶다, 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영화는 싫다 하시는 분들께도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여러분 마음속에 숨겨진, 스스로가 원하는 진정한 휴식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의 대사를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할게요.
유지: 観光するところなんてありませんよ。
관광할 곳 같은 거 여긴 없어요.
타에코: じゃあここに遊びに来た人は、いったい何をするんですか?
그럼 여기 놀러 온 사람들은 대체 뭘 합니까?
유지: たそがれ・・・る?
사.. 색?
...
타에코: ここはたそがれる以外に何かないんですか?
여긴 사색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나요?
하루나: でもたそがれないのに、ここへいったい何をしにきたんですか?
사색하러 온 게 아니면, 여기엔 뭐 하러 오신 거예요?
타에코: ・・・. いろいろ。
여러.. 가지.
...
유지: 何もないけど、ここには美味しい肉や魚があります。
아무것도 없지만, 여기엔 맛있는 고기와 생선이 있어요.
...
요모기: 先生、ここで飲む ビール は最高です。
선생님, 여기서 마시는 맥주는 최고예요.
...
사쿠라: 大切なのは、焦らないこと。焦らなければ、そのうち、きっと。
중요한 건, 초조해하지 않는 것.
조급해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소소한 일본 문화생활 > 일본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영화] 하나와 앨리스 花とアリス 첫사랑과 짝사랑, 그리고 거짓말 (0) | 2021.01.13 |
---|---|
[일본 영화] 사채꾼 우시지마 시리즈 闇金ウシジマくん 사채의 지옥 (0) | 2021.01.11 |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커피, 시나몬 롤, 오니기리, 그리고 사람들. (1) | 2021.01.08 |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1) | 2020.12.29 |
[일본 영화] TOO YOUNG TO DIE 렛츠락!죽어서 하는 밴드 (1) | 2020.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