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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본 문화생활/일본 영화이야기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돌아올게, 동생들을 잘 부탁해.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283#1151792

 

여기, 오늘 이사를 온 가족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없고 엄마와 네 형제가 살고 있는데 왜인지 이사 당일, 아이 두 명은 캐리어 가방에 숨겨져 오고,
한 명은 다른 곳에서 이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삿짐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낸 저녁 시간,
아이 엄마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알았다고 대답을 합니다. 아마도 계속 그래 와서 적응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283#1151792

 

장남과 장녀는 이미 밥을 할 줄도 알고 세탁을 할 줄도 압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칭찬도 받고 싶고, 조금 더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엄마는 바쁩니다.
아이들과 잘 지내긴 하지만 어딘가 육아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집을 며칠씩 비우기 시작하고, 결국엔 장남에게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편지와 돈을 두고는 집을 나가버립니다.

며칠 지나면 엄마가 오겠지, 좀 더 지나면 엄마가 오겠지 하며 동생들을 돌보던 장남도
어느새인가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설마, 하며 희망을 가져 보지만 계절이 바뀌고, 어느새 전기와 물까지 끊기면서 이대로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들끼리 살아가야 한다, 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남은 어떻게 동생들을 돌봐야 할까요?
아이들끼리만 남은 생활,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2017 재개봉 포스터.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283#1151792

 

 

*이하 스포일러 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실제 사건(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모티브로는 하고 있지만 현실 고발극/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닌 그의 색깔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실제 사건으로부터 10년이 넘은 후 제작된 것으로 부분 부분 각색도 많이 되어있습니다.
(감독 자신도 비극을 전하려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평가할 때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아이들만의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도 그 아이들이 어떠한 시간을 보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의 기억과 일어난 사건,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렇지 않았을까 유추했을 뿐입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가상의 설정이라고 해도 우리는 아무도 그들이 어떤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은 그 시간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힘든 상황만을 그려낸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식의 표현도, 실제 사건을 미화하려는 식의 표현도, 사실 고발을 하려는 표현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그렇다고 집을 나간 엄마를, 아빠를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잘 버티던 장남이 어느 날 너무나 버거운 마음에 안 내던 짜증을 낼 때도 형제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봅니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장면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어떻게든 살아가려 고민하는 모습들이 더 많이 그려집니다.
이런 모습들은 만약 이런 사건이 생겼을 때, 아이들이 최소한 이렇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나마.. 하는 어느 종류의 희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사건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283#1151792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극찬하는 부분은 바로 출연자들의 연기, 그들이 표현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출연자들이 표현한 그 분위기를 고레에다 감독은 섬세한 연출로 공기감에 녹여내고 있는데
그게 굉장히 현실 같아서 보는 내내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연기를 지시할 때, 보통의 정해진 시나리오와 극본을 기준으로 하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일부러 상황만 설명한 채 연기자들이 스스로 연기를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어른의 지시가 아닌, 극을 연기하는 아이의 눈으로 상황을 상상하고 표현했기에 더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장남 역을 연기한 야기라 유야의 눈빛은 어떻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먹먹함을 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40283#1151792

 

실제 사건은 영화보다도 잔혹한 현실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네 형제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다섯 형제였고,
영화에서는 장남이 형제를 위해 굉장히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달랐다고 하고,
영화에서는 추락하여 사망하는 아이의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기사를 찾아보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그 사실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청소년 관람 불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들만 남아 생활이 가능했던 걸까요? 
그건 바로 이 아이들이 실제 사건에서도, 영화에서도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에 이사하는 장면에서 두 아이는 숨겨진 채로, 한 아이는 밖에 있다 들어오는 것, 
아이들에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엄마가 당부했던 것도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아이란 것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태어나면 출생 신고를 하고, 나이가 되면 학교에도 가야 합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도 대충 어디 사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며칠씩이나 학교를 안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도 주변에 상담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실제 사건의 아이들은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어서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 사건에서 발각된 이유도 집주인이 집세가 들어오지 않아 몇 번 집을 찾았다가,
불량 청소년들의 집합소처럼 되어있는 것을 보고 신고를 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영화니,
저는 끝 부분엔 경찰이 들이닥치거나, 실제 이런 사건이 있어서... 등으로 마무리되려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제나처럼, 닥친 상황 속에서 또 하루를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그 마지막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의문을 가지게 하는데요,
아마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점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단순히 동정을 하고 위로를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https://eiga.com/movie/1568/photo/

 

영화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현실이기도 한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색으로 표현된 영상미는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으며 보고 난 후 복잡 착잡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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